
김밥 한 줄에 28달러.
환율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한국 돈으로 약 4만원에 가까운 가격이다.
한국에서 김밥을 자주 먹는 사람이라면 가격부터 다시 보게 된다.
“김밥 한 줄이 4만원이라고?”
지난 2026 US오픈이 열린 뉴욕 USTA 빌리 진 킹 내셔널 테니스 센터에는 KIMBOP이라는 김밥 전문 스탠드가 새롭게 들어왔다. 불고기 김밥은 28달러에 판매됐고 현장에서 화제를 모았다.
US오픈 공식 사이트 역시 KIMBOP을 2026년 새로 등장한 음식 브랜드로 소개했고,
prime beef bulgogi가 들어간 김밥을 그해 화제가 된 메뉴 가운데 하나로 다뤘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정말 궁금한 것은 28달러가 아니다.
한국에서는 일상적인 음식인 김밥이 왜 그 공간에서는 전혀 다른 가격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을까?
이 질문은 김밥을 넘어 커피, 막걸리, 한식, 지역 음식, 전통 제품까지 이어진다.
프리미엄은 제품 안에 고정되어 있는 속성이 아니다.
소비자가 무엇과 비교하고, 어떤 상황에서 경험하며,
그 가격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가 달라질 때 같은 제품의 가치도 달라질 수 있다.
다만 장소만 바꾼다고 프리미엄 브랜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바로 그 차이를 US오픈의 김밥이 보여준다.
한국의 4만원 김밥과 US오픈의 28달러 김밥은 같은 가격이 아니다
4만원이라고 들으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국 김밥과 비교한다.
동네 김밥집의 한 줄 가격을 떠올린다.
그러니 터무니없이 비싸 보인다.
하지만 US오픈 현장에 있는 사람은 반드시 그렇게 비교하지 않는다.
그 사람 앞에 놓여 있는 선택지는 한국의 몇 천원짜리 김밥이 아니다.
US오픈 경기장에서 판매되는 다른 음식이다.
실제로 2026 US오픈 공식 메뉴를 보면 pastaRAMEN의 치킨 데리야키 라멘은 29달러, 새우 스캠피 라멘은 27달러였다.
이 기준으로 다시 보면 28달러 김밥은 갑자기 다른 위치에 놓인다.
한국 김밥 가운데 가장 비싼 음식이 아니라,
US오픈에서 한 끼로 선택할 여러 음식 가운데 하나가 된다.
가격은 그대로인데 비교 대상이 달라졌다.
그리고 비교 대상이 달라지자 가격의 의미도 달라졌다.
가격을 올린 것이 아니라 제품이 놓인 문맥이 바뀌었다
우리는 프리미엄을 이야기할 때 흔히 제품부터 본다.
더 좋은 재료를 쓰고,
포장을 고급스럽게 만들고,
매장을 화려하게 꾸미고,
가격을 올리면 프리미엄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US오픈 김밥의 재미있는 점은 다른 곳에 있다.
김밥이라는 음식 자체는 한국 사람에게 낯설지 않다.
밥과 김, 단무지와 채소, 고기 같은 재료를 말아 만든 음식이라는 기본 구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바뀐 것은 그 주변이다.
뉴욕이라는 도시, US오픈이라는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 한정된 현장, 세계 각지에서 모인 관람객,
K-푸드에 대한 관심이 김밥을 둘러싸고 있다.
US오픈은 매년 유명 셰프와 뉴욕의 여러 음식 브랜드를 대회 안으로 끌어들이며
식음료 자체를 관람 경험의 한 부분으로 소개해 왔다.
김밥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제품이 완전히 다른 음식으로 변한 것이 아니라
제품이 읽히는 문맥이 달라진 것이다.
그런데 정말 ‘똑같은 김밥’일까?
여기서 한 번 더 봐야 한다.
한국의 평범한 김밥을 그대로 미국으로 가져가 가격표만 28달러로 바꾼 것은 아니다.
KIMBOP은 뉴욕의 COTE Korean Steakhouse와 COQODAQ 등을 만든 외식 사업가
Simon Kim이 2026 US오픈에서 새로 선보인 콘셉트다.
Simon Kim은 어린 시절 한국의 운동회에서 친구들과 도시락을 펼쳐놓고 어머니들이 만든 김밥을 함께 먹었던 기억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특히 자신의 어머니가 만든 김밥이 가장 인기가 있었다는 기억을 이야기했다.
여기에 셰프 Eunjo “Jo” Park가 참여했다.
불고기 버전에는 prime beef bulgogi가 사용됐고, 오리지널 김밥은 우엉·계란·단무지·당근·베이비 케일 등으로 구성됐다.
이 사실은 중요하다.
US오픈이라는 무대가 관심을 만들어도 김밥 자체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높은 가격은 오히려 불만을 키울 수 있다.
장소는 가치를 대신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다르게 보게 만드는 조건에 가깝다.
제품은 결국 그 기대를 버텨야 한다.
프리미엄은 원가에 일정 금액을 더한다고 만들어지지 않는다
가격을 원가의 결과로만 생각하면 28달러 김밥은 이해하기 어렵다.
밥값이 얼마고, 김값이 얼마고, 불고기 원가가 얼마인지 계산한 뒤 적정 마진을 더하는 것만으로는 이 가격을 설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소비자는 상품을 살 때 원가표를 보고 결정하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다른 선택지와 비교한다.
US오픈에 들어간 관람객이 점심을 먹으려고 할 때 실제 질문은 이런 것에 가깝다.
‘김밥의 원가는 얼마인가?’ 보다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
그 순간 김밥은 한국의 김밥집과 경쟁하지 않는다.
27달러, 29달러짜리 라멘과 경쟁하고 다른 경기장 음식과 경쟁한다.
그리고 처음 접하는 한국 음식이라는 경험, US오픈에서 먹어봤다는 기억, K-푸드에 대한 관심까지 선택 이유에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가격을 판단하려면 제품만 보면 부족하다.
가격은 고객의 기대, 시장의 대안, 제공되는 가치가 만나는 곳에서 이해해야 한다.
비싼 것과 프리미엄은 다르다
그렇다면 28달러 김밥은 프리미엄 브랜드일까?
여기서는 조심해야 한다.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과 프리미엄 브랜드가 되었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경기장이라는 공간에는 다른 조건도 있다.
밖으로 나가 더 저렴한 김밥을 사 오는 것과는 다른 환경이고, 판매되는 음식도 제한돼 있다.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라는 특수한 경험이 있으며 현장의 식음료 가격 자체도 일반적인 외식 가격과 다르다.
이 환경에서는 장소가 높은 가격을 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장소를 벗어난 뒤에도 같은 가격을 받을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다.
맨해튼에 KIMBOP 매장을 열어도 사람들이 28달러를 지불할까?
한국 음식에 특별한 관심이 없는 사람도 다시 찾을까?
비슷한 가격의 다른 음식이 많아져도 김밥을 선택할까?
바로 여기서 높은 가격과 프리미엄 브랜드가 갈라진다.
높은 가격은 특정 조건에서 받을 수 있다.
프리미엄은 그 조건이 달라져도 소비자가 더 높은 가치를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장소는 가격보다 먼저 비교군을 바꾼다
공항에서 마시는 커피가 비싸다.
호텔에서 먹는 라면도 비싸다.
미술관 안의 기념품과 관광지의 지역 음식 역시 일반 매장과 가격이 다르다.
우리는 이미 장소에 따라 다른 가격을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왜 그럴까?
제품만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장소에서만 가능한 경험도 함께 산다.
하지만 브랜드가 할 일은 단순히 좋은 장소를 찾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그 장소에서 소비자가 무엇과 비교하게 되는지를 읽는 것이다.
한국에서 김밥을 팔면서 28달러를 받는 것과 US오픈에서 28달러를 받는 것은 같은 가격 전략이 아니다.
숫자는 같아도 비교 기준이 다르다.
그래서 작은 브랜드가 가격을 결정할 때도 경쟁사의 가격만 조사해서는 부족하다.
고객이 어떤 순간에 우리를 만나고, 그때 다른 무엇과 비교하며,
무엇을 얻기 위해 돈을 쓰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K-푸드 인기만으로 설명하면 놓치는 것
물론 K-푸드의 인기는 이 사례에서 빼놓기 어렵다.
2026 US오픈 음식 목록에는 KIMBOP뿐 아니라 Simon Kim의 COQODAQ·CQDQ,
한국식 라이스볼을 판매하는 Korilla BBQ도 포함됐다.
COQODAQ의 ‘Golden Set’ 역시 화제가 됐다. 치킨 너겟 여섯 조각에 캐비아와 크렘 프레슈를 곁들인 메뉴로,
2026 US오픈에서도 100달러 메뉴로 소개됐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K-푸드가 세계적으로 인기 있으니 비싸게 팔렸다”고 설명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친다.
문화적 관심은 사람을 데려올 수 있다.
처음 먹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그다음에는 음식 자체가 남는다.
맛이 없으면 다시 선택하지 않는다.
가격에 비해 경험이 약하면 ‘한 번 먹어본 비싼 음식’으로 끝난다.
반대로 제품의 품질, 이야기, 공간, 가격, 서비스가 같은 방향을 만들면 ‘한국 음식이니까 한번 먹어보는 것’을 넘어
하나의 선택 이유가 된다.
화제성은 첫 선택을 만들 수 있지만 프리미엄 브랜드는 다음 선택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평범한 제품도 프리미엄이 될 수 있을까?
가능하다.
하지만 ‘평범한 것을 비싸게 팔면 된다’는 뜻은 아니다.
‘좋은 장소에 들어가면 된다’는 의미도 아니다.
제품에는 그 가격을 버틸 본질이 있어야 한다.
장소는 그 제품을 다른 맥락에서 보게 해야 한다.
소비자가 비교하는 대안이 달라져야 한다.
가격과 서비스는 그 기대와 맞아야 한다.
그리고 실제 경험이 그 약속을 증명해야 한다.
이 조건이 맞으면 평범하다고 여겼던 것도 전혀 다른 가치로 읽힐 수 있다.
김밥만 그런 것이 아니다.
동네에서 마시던 막걸리,
시장에서 먹던 떡,
지역에서 흔했던 재료,
오래된 공예품,
평범해 보였던 생활용품도 마찬가지다.
익숙한 곳에서는 ‘흔한 것’이지만 다른 시장에서는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브랜드가 해야 할 일은 익숙한 것을 억지로 고급스럽게 꾸미는 것이 아니다.
누구의 어떤 상황에서는 이 제품의 가치가 다르게 보일 수 있는지를 발견하는 일이다.
프리미엄은 비싼 제품의 속성이 아니다. 제품이 새로운 비교군에 놓이고,
그곳에서 높아진 기대를 실제 가치가 증명할 때 소비자가 내리는 판단이다.
US오픈의 28달러 김밥은 그래서 재미있다.
한국에서 김밥의 가치가 갑자기 열 배가 된 것이 아니다.
김밥이 놓인 장소가 바뀌고,
함께 비교되는 음식이 달라지고,
그 음식에 붙는 경험과 이야기가 달라졌다.
프리미엄을 만들고 싶다면 가격부터 올릴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무엇과 비교하게 될지를 먼저 봐야 한다.
참고 자료
- US Open, Meet the chefs serving new flavors at the 2026 US Open
- US Open, What's new to eat and drink at the 2026 US Open?
- US Open, Food & Beverage
- US Open, pastaRAMEN Menu
- Seoul Economic Daily, K-Gimbap Sells for $28 a Roll at US Open, Wins Over New York
- ChosunBiz, US Open elevates Korean fried chicken as fine dining goes mainstream
함께 읽으면 좋은 글
비비고 김밥은 어떻게 미국 4,734개 매장에 들어갔을까?
미국에서 비비고 냉동김밥을 판매하는 매장이 4,734곳으로 늘었습니다.CJ제일제당에 따르면 2026년 1월부터 7월까지 미국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59% 증가했습니다. 판매 매장은 지난해 1,924곳
hellobrand.tistory.com
'안녕브랜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30이 빠진 힙불교 - 오래된 것을 지금의 언어로 번역하는 법 (0) | 2026.10.02 |
|---|---|
| 외국인은 왜 한국까지 와서 치료 받을까? - 국가 브랜드의 힘 (1) | 2026.10.02 |
| 다이슨이 500달러 칫솔을 만든 이유 - 브랜드는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까? (0) | 2026.10.02 |
| 야요이 쿠사마 사망 뒤 다시 묻는 질문 - 작품과 작가는 어디까지 하나의 브랜드인가? (0) | 2026.10.01 |
| Apple iPhone Duo - 후발 브랜드가 시장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 (0) | 2026.10.01 |